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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상식

성서용어 (빠스카란)

by scope 2016. 5. 18.

성서용어(빠스카란)|     사랑의 모후Pr.인들의 모임_자료실

 
파랑새 | 조회 13 |추천 0 | 2001.12.04. 18:24
 

 빠스카란 원래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이 가장 성대하게 지내던 명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마다 춘분 뒤 만월 직후의 첫 삽밭날에 조상들의 에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이 빠스카 축제를 지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일년에 한번 빠스카 축제 때만 에집트 탈출을 기념한 것이 아니라, 연중 매일 성전에서 저녁제사를 드릴 때는 에집트 탈출을 기념했고, 아침제사를 드릴때는 시나이 계약을 기념했었다.

 이렇게 구약시대에 이미 연중 한번의 성 대한 빠스카 축제와 매일 드리는 빠스카 기념 예식(제사)이 있었던 것이다.

 구약시대 후기에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은 빠스카 신학을 정립하여, 하느님이 단신 백성과 또한 그 개개인을 빠스카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교리를 체계화하고 유대인들의 영성생활의 원리로 삼았다. 하느님은 항상 고난의 길을 통해 당신 백성을 영광으로 이끌어 가시며, 고난은 영광을 기약한다고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에집트에서 겪은 고난은 그후 모든 세대가 당하는 갖가지 고통의 예형으로 해석되고, 에집트의 파라오와 그의 군대는 하느님의 백성을 압박하는 악한 세속 권세를 상징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홍해를 건너서 약속된 땅에 이른 것이 곧 영광의 전형으로 되새겨져졌다.
 고난없이 영광도 있을 수 없고 또한 영광에의 희망이 엿보이지 않는 고난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신학에 입각해서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신학자들은 예수의 수난과 죽으심, 초대교회의 신학자들은 예수의 수난과 죽으심, 그리고 그분의 부활이 바로 빠스카 신비의 원천적 사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가리켜 "주님의 빠스카"라 일컫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당시의 빠스카 축제에 앞서 마련하신 만찬식을 가리켜 "우리의 빠스카" 또는 "신약의 빠스카"라 불렀다.
 오늘날 우리도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처럼, 해마다 봄이 되면 "주님의 빠스카"를 성대히 경축할 뿐 아니라, 또한 매일의 미사성제에서도 그것을 기념하고 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영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빠스카 희생에 한몫 참여하게 되는 그 성스러운 잔치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에 의해 사람과 단 한번 영원히 맺어진 새로운 계약을 재현하고 믿음과 희망으로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전하면서 장차 성부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종말의 잔치를 미리 상징하며 맛보는 것이다.

 " 특히 일요일은 "사도시대의 전통에 따라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빠스카 신비를 경축하는 날이다."
 그러나 빠스카 신비는 단지 전례행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전례력 빠스카도 중요하지만 우리 일상생활의 실천적 빠스카도 중요하다. 우리가 전례를 통해 역사적인 '주님의 빠스카'에 성사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곧 전례적 빠스카다.

 실천적인 빠스카란 우리의 나날이 생활이나 우리의 일생, 그리고 각 민족들의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역사 그 자체를 가리킨다.
 칠성사가 빠스카 신비와 관련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성세성사와 성체성사는 바로 빠스카 신비를 전례상으로 재현한다. 로마서 6,4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성바울로는 빠스카 신비를 성세와 관련시켜서 이렇게 설명했지만, 미사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가 이런 성사들을 통해 빠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목적은 일상생활의 실천적 빠스카를 위해 필요한 영적 힘을 얻는 데에 있다.
 마태 16,24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요한 12,24에서도 예수께서는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밀알 하나가 당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이 성서말씀들은 우리 생활 빠스카의 요체를 가르치고 있다. 예수께서 당시 목숨을 바쳐 죽음에서 부활의 영광으로 넘어가셨듯이, 우리도 날마다 자기희생적인 생활을 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들어높이실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도 당시의 막강한 문명 대국인 에집트를 떠나 사막의 그 쓰라린 고초를 겪음으로써 새로운 백성이 되었고 그들의 역정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족, 모든 개인에게 빠스카의 길을 일깨워 주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에집트에서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발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의식주에는 걱정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억압을 당했다는 것은 깊이 묵상해 볼 만하다.

 오늘날 우리도 과학 기술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세계에서 여러모로 삶의 즐거움을 누리고는 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현세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가지 제약을 느끼며 괴로움을 당할 때가 많다. 그럴수록 우리는 세속적 가치관을 버리고 보다 나은 세계를 동경하며 그 세계로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홍해를 건너고 사막을 넘는길이니,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을 갈 때 마침내 도달하게 될 부활과 영원한 생명도 미리 신비스럽게 체험하고 있다.

 어둡고 과로운 길을 가면서도 그 신비로운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빠스카의 신비다. 낮추어짐과 들어높여짐, 버리는 것과 얻는 것, 질병과 치유, 고난과 평안, 죽음과 부활, 이렇게 빠스카 신비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포괄하고 있다.
 우리는 이 빠스카 신비를 자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연은 하느님이 계시하신 빠스카 신비의 예형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예수께서도 이 신비와 관련해서 자연현상의 예를 한 가지 들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땅에 뿌려진 씨앗도 죽어야 만은 열매를 맺고 부활의 풍요를 누린다.

 그렇게 보면, 가을과 겨울은 빠스카 신비의 어두운 면을 가리키고 봄과 여름은 그 밝은 면을 가리킨다. 따라서 새로운 생명이 소생하는 봄철에 빠스카절을 지내는 것은 참으로 뜻이 깊다고 하겠다.
 한 해의 절기뿐 아니라 하루의 밤과 낮도 빠스카 신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은 묻히는 것에 비기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부활에 비길 때 밤은 죽음을 상징하고 낮은 생명을 상징하지 않는가. 그렇게 보면 아침시간과 저녁시간은 바로 "건너감의 시간", 즉 빠스카의 시간이다. 따라서 이때 빠스카 잔치인 미사를 드리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일생도 빠스카의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은 출생할 때 어둠 속에서 밝은 데로 나온다. 그리고 영원에 비하면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빛 속에서 얼마동안 산다. 어린 시절은 인생의 아침이며 봄이라 할 수 있다. 이윽고 청년기가 되고 뒤이어 장년기로 접어든다. 하루해가 가면 어김없이 저녁이 오고 밤이 되듯, 인생도 저물 때가 오며 마침내는 어둠 속에 묻히고 만다. 그러나 밤이 가고 아침이 되면 우리가 잠에서 일어나듯이, 인생의 마지막 밤인 죽음 다음에는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요컨대, 우리는 나날의 빠스카에서 해마다의 빠스카로, 그리고 일생의 빠스카로 삶의 노정을 더듬어 나가야 한다. 그러면 죽음은 우리의 마지막 빠스카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하느님께서 어떻게 당차 있을 부활을 거듭거듭 증거해 주시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킴으로써 그를 부활의 첫열매로 삼으셨습니다. 형제들이여, 흐르는 세월도 부활의 뚜렷한 표지입니다. 밤이 잠들면 낮은 일어납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뒤따라 옵니다.

 곡식을 실례로 들어봅시다. 씨앗이란 무엇입니까? 또 그것은 어떻게 싹틉니까? 씨뿌리는 사람이 나아가 온갖 시앗을 뿌리면 땅에 떨어진 마른 맨 씨앗은 부패합니다. 그다음 하느님 자비의 힘이 그 큰 부패에서 그를 일으키시어 한 알맹이에서 여러 알맹이가 생기게 하면서 열매를 맺습니다."   (교황 성클레멘스 1세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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